임재형 교수(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오늘날 국제질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이란 전쟁’ 등으로 인해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급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각국은 자국의 생존과 국가이익을 지키기 위해 이른바 ‘각자도생’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한국 역시 이러한 국제질서의 변화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중동 지역으로부터 원유와 가스를 대부분 수입하고 있어 국제 정세의 불안정에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국익을 지켜 나가기 위해서는 내부 갈등과 국론 분열을 최소화하며 국가적 역량을 하나로 결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의 현실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충분히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단국대학교 분쟁해결연구센터가 2008년부터 매년 실시해 온 ‘갈등 및 분쟁에 관한 시민인식조사’에서도 확인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갈등 인식이 다소 완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많은 국민들은 한국 사회의 갈등 수준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분쟁해결연구센터 뉴스레터 396호 참조). 특히 박근혜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및 파면 과정에서 나타난 여야 간, 그리고 보수와 진보 진영 간의 극단적 정치 대립은 한국 사회의 갈등을 더 증폭시키고 있다.
물론 이러한 갈등에는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 근본에는 상대방과 나, 그리고 다른 집단과 우리 집단 사이의 ‘차이(difference)’를 수용하지 못하는 태도가 자리하고 있다. 사실 차이 그 자체가 곧바로 갈등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차이를 정당하거나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아가 차별로 인식할 때 갈등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반대로 차이를 ‘다름’으로 인정하고 포용할 경우, 그 차이는 창조와 발전의 원천이 되어 사회 통합과 국가 발전을 이끄는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차이를 ‘틀림’으로 규정하고 배제와 제거의 대상으로 삼게 되면, 상대방은 이를 차별과 억압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결국 사회 분열과 갈등은 더욱 심화되어 국가를 쇠퇴하게 하는 씨앗이 되기도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는 빈부, 성별, 종교, 세대, 지역, 이념, 가치관, 학력, 직업 등 다양한 차이가 존재한다. 여기에 더해 북한에 대한 인식 차이, 그리고 냉전 시기에 형성된 미국·일본과 중국·러시아에 대한 상이한 인식 역시 냉전 종식 이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차이들은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의 정치적 대립과 맞물리며 상대를 협력과 공존의 대상이 아닌 대립과 배제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있다. 그 결과 사회적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은 다원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향한다. 이는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 그리고 집단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용의 정신 위에 세워진 사회를 의미한다. 오늘날과 같은 전환기적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이 지향하는 가치가 세계적 기준으로 자리 잡고 국가적 위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 모두가 차이를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져야 한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열린 마음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갈등을 해결하고 공동체의 미래를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