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민 교수(단국대학교 분쟁해결연구센터)
공공갈등 관리에서 갈등의 위험도를 사전에 진단하는 것은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이해관계자의 규모, 쟁점의 복잡성, 이해관계의 충돌 정도, 집단행동 가능성, 정책 및 사업의 지연 가능성, 사회적 파급효과 등을 통해 갈등의 위험도를 판단한다. 이러한 진단은 갈등이 확대되기 이전에 관리가 필요한 사안을 식별하고 한정된 행정자원을 우선적으로 배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갈등의 위험도가 높다는 것이 곧 해당 갈등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갈등위험도가 ‘관리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실제 갈등관리가 가능한지는 해당 갈등을 둘러싼 환경적 여건과 관리주체의 역량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갈등관리 여부와 방식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갈등의 위험도와 함께 ‘갈등관리 가능성(conflict manageability)’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갈등관리 가능성이란 관리주체가 특정 갈등에 개입하여 갈등의 전개 과정과 이해관계자 간 관계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조건과 역량의 정도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정책이나 사업에서 실제로 변경하거나 협상할 수 있는 조정 가능성, 관리주체가 정책이나 사업을 변경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 주요 이해관계자의 대화와 협의 참여 가능성, 갈등을 분석하고 조정할 수 있는 조직의 전문인력·예산·시간·경험, 그리고 갈등관리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정치적 환경 등이 포함된다.
특히 갈등의 위험도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관리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협의체를 구성하거나 협상에 착수하는 것은 오히려 갈등을 확대할 수 있다. 정책이나 사업에서 실질적으로 변경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거나 관리주체에게 결정 및 조정 권한이 없는 상황에서 협의를 시작할 경우, 이해관계자는 협의를 통해 정책이나 사업에 일정한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가 실제 정책에 반영되지 못할 경우 기존의 쟁점갈등이 행정기관에 대한 불신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갈등등급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갈등의 심각성이나 확산 가능성만을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며, 해당 갈등을 실제로 관리할 수 있는 환경과 역량이 갖추어져 있는지를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갈등의 심각성이 높더라도 조정 가능한 영역이 제한적이거나 관리 주체에게 실질적인 권한이 없고 이해관계자의 협의 참여가 어려운 경우에는 높은 갈등 등급을 부여하고 곧바로 적극적인 갈등관리 절차를 적용하는 것이 반드시 적절한 것은 아니다. 갈등 등급은 단순히 갈등의 심각성을 표시하는 수단이 아니라 갈등관리의 필요성과 관리 가능성을 종합하여 개입의 수준과 방식을 결정하기 위한 기준으로 활용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관리하지 않는 갈등’과 ‘관리할 수 없는 갈등’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전자는 위험도가 낮거나 적극적인 개입의 필요성이 크지 않아 관리자원을 투입하지 않는 선택의 문제이다. 반면 후자는 갈등의 위험도가 높아 관리 필요성은 크지만 권한, 조정 가능성, 당사자 참여, 조직역량 또는 제도적 여건 등이 충분하지 않아 현재의 조건에서는 효과적인 관리가 어려운 경우이다. 따라서 갈등의 위험도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협의체 구성, 조정, 협상 등의 수단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관리가능성이 낮은 갈등을 관리대상에서 제외하거나 방치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경우에는 ‘갈등을 관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자체를 갈등관리의 중요한 과정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결정 권한을 가진 기관을 참여시키고, 협상 가능한 영역을 확보하며, 이해관계자의 참여 조건을 마련하고, 필요한 전문인력과 예산을 확보하는 등의 사전적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관리 가능성이 일정 수준 확보된 이후 갈등의 특성에 적합한 개입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결국 공공갈등 관리에서는 “이 갈등은 얼마나 위험한가?”와 함께 “이 갈등을 현재의 조건에서 관리할 수 있는가?”를 동시에 질문해야 한다. 갈등위험도가 ‘어떤 갈등을 관리해야 하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이라면, 갈등관리 가능성은 ‘어떤 조건과 방식으로 관리해야 하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따라서 갈등 등급의 설정과 관리전략의 선택에서도 위험도와 관리 가능성을 함께 고려함으로써 불필요하거나 무리한 갈등관리 개입을 줄이고, 관리 가능성이 부족한 갈등에 대해서는 먼저 관리환경과 역량을 구축하는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