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4호] 분쟁해결 칼럼: ‘서로 다른 사실’을 믿는 사회, 공공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26.09.30 | 조회수: 16

 

 

                     [제404호] 2026년 09월 30일

 

                발행인: 가상준  편집인: 임재형

                          www.ducdr.org

 

                    Copyright by DCDRⓒ

                       All rights reserved.


 

 

  분쟁해결 칼럼


‘서로 다른 사실’을 믿는 사회, 공공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임재형 교수(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최근 한국 사회의 갈등을 살펴보면 과거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의 갈등이 주로 이해관계나 가치관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면, 이제는 ‘무엇이 사실인가’를 둘러싼 갈등까지 더해지고 있다. 같은 사건이나 정책을 바라보면서도 서로 다른 정보를 접하고, 자신이 접한 정보만을 사실이라고 믿으면서 상대방의 정보는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갖는 것을 넘어 서로 다른 ‘사실’을 믿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 2024년 4월 뉴스레터의 「제22대 총선결과를 사회통합의 기회로 삼자」라는 칼럼에서 우리 사회의 ‘탈진실(post-truth)’ 현상을 지적한 바 있다.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치적 신념과 이해관계, 감정을 기준으로 사실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반하는 주장을 거짓으로 간주하는 현상이 사회갈등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AI)과 SNS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이러한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이제는 누구나 짧은 시간 안에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운 글과 사진, 음성, 영상을 만들 수 있으며, 이러한 정보는 SNS를 통해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에게 전달된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정보라 하더라도 자신이 믿고 싶은 내용과 일치하거나 감정을 자극하게 되면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공공갈등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공공갈등은 본래 이해관계의 충돌뿐만 아니라 사실에 대한 판단과 가치관의 차이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발전시설이나 폐기물 처리시설과 같은 기피시설을 둘러싼 갈등에서는 시설의 안전성, 환경에 미치는 영향,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 등을 놓고 서로 다른 주장이 제기된다. 개발사업에서도 경제적 효과와 환경 훼손의 정도를 둘러싸고 상반된 자료가 제시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출처가 불분명한 통계나 일부 내용만을 편집한 영상, 사실관계가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확산되면 갈등은 더욱 복잡해진다. 본래 논의해야 할 정책의 타당성보다 ‘누구의 말이 진실인가’를 둘러싼 논쟁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상대방이 제시하는 자료뿐만 아니라 전문가나 정부의 설명까지 믿지 않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논의 자체가 어려워진다. 결국 ‘사실에 대한 갈등’이 ‘신뢰의 갈등’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먼저 공공갈등 과정에서 ‘사실’과 ‘가치’, 그리고 ‘이해관계’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사실은 객관적인 자료와 증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영역이고, 가치는 무엇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판단의 영역이며, 이해관계는 정책으로 인해 누가 어떠한 이익과 비용을 부담하는가의 문제이다. 이러한 영역이 서로 뒤섞이게 되면 사실에 대한 반박이 상대방의 가치관과 입장 자체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갈등이 감정적인 대립으로 발전하기 쉽다.


 다음으로 중요한 공공갈등의 경우에는 정부나 공공기관이 일방적으로 자료를 제시하고 주민을 설득하는 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갈등 당사자들이 함께 어떤 사실을 확인할 것인지, 어떤 자료를 사용할 것인지, 어떤 전문가에게 검증을 맡길 것인지를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른바 ‘공동 사실확인(joint fact-finding)’의 방식이다. 조사 결과뿐만 아니라 조사 방법과 자료의 한계, 불확실성까지 공개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고 해서 서로의 이해관계나 가치관의 차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무엇을 놓고 서로 갈등하고 있는지에 대한 공통의 출발점은 마련할 수 있다.


 정부와 공공기관의 정보 공개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갈등이 발생한 이후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를 제시하면서 주민을 설득하기보다는 정책 결정 초기부터 관련 자료와 판단 기준을 충분히 공개해야 한다. 또한 새로운 사실이 확인되어 기존의 판단이나 자료를 수정할 경우에는 무엇이, 왜 바뀌었는지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정보에 대한 신뢰는 정부가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강조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투명한 정보와 공정한 절차가 축적될 때 형성되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자신이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과 일치한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정보를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거나, 자신의 입장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의 정보를 무조건 거짓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정보의 출처가 어디인지, 어떠한 근거에 기초하고 있는지 한 번 더 확인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특히 공공갈등에서 잘못된 정보는 단순한 개인의 판단을 넘어 집단 간 불신과 대립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가질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가치관, 의견이 존재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대화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사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함께 확인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마저 진영과 집단에 따라 달라진다면 대화와 타협의 공간은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공공갈등의 해결은 상대방에게 내가 믿는 사실을 강요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절차를 통해 사실을 함께 확인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AI와 SNS가 우리의 일상과 공론장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는 지금, 공공갈등 관리도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을 넘어 정보와 사실을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하면서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실의 토대를 만들어 가는 것, 이것이 오늘날 한국 사회의 공공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분쟁해결연구센터][지난호 보기]

 분쟁해결연구센터와 분쟁해결포럼은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간입니다. 

분쟁해결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받습니다.감사합니다.

분쟁해결연구센터에서 발송하는 뉴스레터의 수신을 원하지 않으시면 [수신거부]를 클릭해 주십시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로 152 단국대학교 글로컬 산학협력관 635호

Tel: 031-8005-2648 Fax: 031-8005-2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