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국대학교 분쟁해결연구센터는 1990년 이후 한국 사회에 발생한 공공갈등 사례들을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하고 있는데, 매월 발행되는 뉴스레터에 현재의 한국 상황과 유사한 공공갈등 사례들을 발췌하여 소개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 9월 1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청’과 관련하여 “전쟁에 관여 또는 개입하는 파병은 없다”며, “전쟁 불관여·불개입 원칙은 지금까지도 지켜왔고 앞으로도 계속 지켜질 것”고 밝혔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은 “다만 우리로서는 다른 국가들이 하는 것처럼 자국의 상선과 원유 수송로 또는 국민들의 생명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활동은 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하다”고 강조하였다. 이에 대한 논란성 보다고 이어지자, 청와대는 9월 19일 언론 공지를 통해 “이 대통령은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에 대한 중동 관련 협조 요청을 거절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2003년 2월부터 2003년 4월까지 지속된 ‘이라크 파병 반대 분쟁’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데, 아래는 분쟁해결연구센터 ‘공공갈등 DB’에 수록된 ‘이라크 파병 반대 분쟁’의 일부분이다.
<‘이라크 파병 반대 분쟁’의 일부 경위> 2003년 2월 10일 김석수 국무총리는 미국의 이라크전 파병요청시 대책과 관련, “아프가니스탄 또는 동티모르 파병 범위 내에서 사전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3년 2월 11일 참여연대, 녹색연합 등 700여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전쟁반대 평화실현 공동실천’은 서울 종로구 미국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 중단과 한국 정부의 협력거부를 거듭 촉구했다.
--- (중략) ---
2003년 3월 12일 윤영관 외교부장관은 이라크 전쟁 지원 문제와 관련, “미국으로부터 전투병 파병 요청은 없었다”면서 “정부는 비전투병 파병과 경제적 지원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 (중략) ---
2003년 3월 15일 700여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전쟁반대 평화실현 공동실천’과 여중생 추모 범대위는 서울 종묘공원에서 일반 시민과 회원 등 3,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미국의 이라크 침공 및 한반도 전쟁위협 반대’ 등을 촉구하며 ‘반전평화 촛불 대행진’을 벌였다.
--- (중략) ---
2003년 3월 18일 정부는 미국-이라크전쟁 발발시 빠른 시일 내에 국회 동의를 거쳐 대대급 공병부대 500~600명을 파견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 (중략) ---
2003년 3월 18일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 등 7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전쟁반대 평화실현 공동실천’과 ‘여중생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 등은 서울 종로구 청와대 입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의 이라크전 지지와 파병 결정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 (중략) ---
2003년 3월 30일 박관용 국회의장은 이라크전 파병동의안에 대한 시민단체의 낙선운동 공언과 관련, “국회의원이 특정한 입장을 갖는다고 해서 낙선운동을 벌이거나 지구당사를 점령하겠다고 협박하는 것은 민주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민주주의의 적”이라며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의회민주주의를 가로막는 행위를 자제해 달라”고 호소했다.
--- (중략) ---
2003년 4월 2일 국방부에 따르면 이라크 파병 지원 마감 결과 평균 경쟁률은 2.7대 1이었다. 건설공병지원단 566명과 의료지원단 100명으로 구성되는 파병부대원 666명 중 별도 선발자 171명을 제외한 495명 모집에 1,347명이 몰린 것이다.
--- (중략) ---
2003년 4월 3일 이라크 파병부대원 규모가 666명에서 동의안처리 하루 만에 673명으로 늘었다.
--- (중략) ---
2003년 4월 4일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최근 “국무회의가 의결한 ‘국군부대의 이라크전쟁 파견동의안’이 헌법상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한 것”이라며 민주노동당이 제기한 ‘국무회의 파견동의안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이유가 없다며 기각했다고 밝혔다.
--- (중략) ---
2003년 4월 7일 시민단체들이 내년 총선에서 이라크전 한국군 파병에 찬성한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낙선운동’을 벌이겠다는 입장을 유보했다.
--- (중략) ---
2003년 4월 14일 육군은 이라크전에 파병될 건설공병부대(서희부대) 부대장에 최광연(48) 대령, 의료지원단(제마부대) 부대장에 김용규(43) 중령을 각각 임명했다고 밝혔다. 2003년 4월 15일 이라크에 파병될 건설 공병지원단(573명)과 의료지원단(100명)이 이라크 남부 지역의 나시리야 외곽 지역에 배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 (중략) ---
2003년 4월 15일 경실련과 YWCA, 흥사단 등 35개 단체가 ‘반핵반전 평화를 위한 시민네트워크’ 출범을 선언했다.
--- (중략) ---
2003년 4월 30일 이라크 전후복구와 의료지원을 위한 파병부대 1진 300여명이 새벽 이라크로 출발했다. 20일 출발한 1진은 공병부대인 서희부대 236명과 의료지원부대인 제마부대 90명 등 모두 326명이다. 한편, 공항 밖에서는 시민단체 회원 30여 명이 파병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2003년 5월 1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에서 군사적 국면(전쟁)은 끝났다”며 이라크전 종전을 선언했다. 한국 정부의 이라크 파병안이 통과되자, 한국군의 파병을 반대하던 시민단체 및 NGO들의 시위성격이 파병반대 및 파병철회에서 반전(反戰)시위로 바뀌면서, ‘이라크 파병 반대 분쟁’은 일단락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