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2호] 분쟁해결 칼럼: 민선 9기, 공약을 ‘갈등관리의 언어’로 다시 읽어야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26.07.30 | 조회수: 12

 

                     [제402호] 2026년 07월 30

 

                발행인: 가상준  편집인: 임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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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쟁해결 칼럼


민선 9기, 공약을 갈등관리의 언어로 다시 읽어야

 

임재형 교수(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지난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되었고, 7월 1일부터 민선 9기 지방정부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이제 지방정치는 선거 과정에서 지역의 미래를 약속하던 ‘공약의 시간’에서, 그 약속을 구체적인 정책과 사업으로 실행해야 하는 ‘행정의 시간’으로 이동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역시 새로운 지방정부의 안정적인 출범과 지역사회의 화합, 원활한 업무 인계를 강조하였다.

 

 공약은 선거 과정에서는 지역발전과 주민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희망의 언어로 제시된다. 그러나 실제 집행 단계에 들어가면 공약은 예산, 입지, 규제, 환경, 교통, 보상, 지역 간 형평성 등 구체적인 이해관계의 문제로 바뀐다. 교통망과 산업단지, 주택개발과 도시재생, 공공시설과 환경·에너지시설, 행정구역과 공공기관의 배치에 관한 정책은 모두 지역의 미래를 바꿀 수 있지만, 그 혜택과 부담이 모든 주민에게 동일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혜택을 얻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재산권 제한과 생활환경의 변화, 안전에 대한 우려와 경제적 부담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비용과 편익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은 당선자가 제시한 정책의 기본 방향에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선거 결과가 개별 사업의 입지, 규모, 추진 방식, 비용 분담과 일정까지 모두 승인한 백지위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공약에 찬성했던 주민이라도 사업의 구체적인 내용과 자신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알게 되면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의견을 지역이기주의나 공약 추진을 방해하는 행위로 단정하면 정책에 관한 이견은 곧 사람과 집단에 대한 대립으로 변한다. ‘사업을 반대하는 주민’과 ‘지역발전을 가로막는 세력’이라는 낙인이 붙는 순간, 갈등의 중심은 정책의 타당성과 대안에서 우리 편과 상대편의 대결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공약을 신속하게 이행하는 것만이 능력 있는 지방정부의 기준도 아니다. 단국대학교 분쟁해결연구센터의 ‘갈등과 분쟁에 관한 시민인식조사’를 보면, 2010년 이후 역대 정부별 평균에서 ‘정부가 개입하여 신속하게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갈등 당사자들이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근소하게나마 계속 높게 나타났다. 이는 국민들이 갈등 해결에서 속도뿐 아니라 당사자의 참여와 합의 과정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민선 9기 지방정부는 공약을 단순한 사업 목록이 아니라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의 지도로 다시 읽어야 한다. 우선 주요 공약별로 누가 혜택을 얻고 누가 부담을 지는지, 직접적·간접적 이해관계자는 누구인지, 인접 지방자치단체나 미래 세대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점검해야 한다. 사업의 필요성뿐 아니라 입지와 규모, 재원 조달 방식, 대체 가능한 방안과 불확실성까지 사전에 검토해야 한다. 특히 갈등 가능성이 큰 사업은 최종 입지나 추진 방식을 발표한 뒤 주민을 설득하려 하기보다, 결정 이전에 갈등영향분석을 실시하여 쟁점과 이해관계자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더하여 실질적인 대표성을 갖춘 협의 구조도 마련해야 한다. 행정기관이 익숙한 지역단체의 대표자만을 불러 의견을 듣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업으로 직접 영향을 받는 주민, 찬성과 반대 입장을 가진 집단, 미래의 시설 이용자, 사회적 약자와 인접 지방자치단체 등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대표자가 단체의 직함만을 가진 ‘감투형 대표’에 머물지 않고 실제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하고 다시 전달할 수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갈등의 당사자가 빠진 협의체는 합의를 만들어내더라도 그 합의의 정당성과 지속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결론에 합의하기 전에 절차부터 합의하는 것도 중요하다. 누가 참여하고 어떤 정보를 공유할 것인지, 대안은 어떤 기준으로 비교할 것인지, 협의 결과를 최종 결정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합의 이후 이행 여부를 어떻게 점검할 것인지 미리 정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지방정부와 갈등 당사자 모두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중립적 조정자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결론을 이미 정해 놓은 설명회나 형식적인 의견수렴은 오히려 행정에 대한 불신을 키울 수 있다.

 

 물론 참여와 숙의가 모든 사업을 무기한 지연시키거나 일부 이해관계자에게 사실상의 거부권을 주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협의의 기간과 판단 기준을 명확히 하고,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에는 선출된 지방정부가 최종적으로 책임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다만 그 결정은 어떤 의견과 대안을 검토했으며 왜 특정 방안을 선택했는지 주민에게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공정한 절차를 거친 결정과 일방적으로 통보된 결정은 같은 결론이라 하더라도 주민이 받아들이는 정당성에서 큰 차이가 난다.

 

 민선 9기 지방정부의 리더십은 반대의 목소리를 얼마나 빨리 잠재우는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얼마나 일찍 드러내고 공정하게 조정하는가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 사전 갈등관리는 초기에는 다소 느리고 번거로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갈등이 발생한 뒤 반복되는 집회와 소송, 사업 중단과 행정 불신에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갈등을 예방하는 행정이 결국 가장 빠른 행정이다.

 

 

 

 선거의 승리는 공약을 추진할 권한을 부여하지만, 주민과 협의해야 할 절차까지 생략할 권한을 주지는 않는다. 공약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길은 반대의 목소리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목소리가 제도 안에서 충분히 말하고 조정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갈등관리는 공약 이행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공약을 지속가능하게 실현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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