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국대학교 분쟁해결연구센터는 1990년 이후 한국 사회에 발생한 공공갈등 사례들을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하고 있는데, 매월 발행되는 뉴스레터에 현재의 한국 상황과 유사한 공공갈등 사례들을 발췌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 6월 2일부터 51일 동안 이어져 오던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이 7월 22일 하청노동자와 하청업체들이 임금 4.5% 인상과 폐업 하청업체 노동자 고용승계 노력 등에 대해 합의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현재 한국의 조선업은 2022년 상반기 수주 실적에서 2018년 이후 4년 만에 중국 조선업을 제치고 1위를 탈환했지만, 이번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임금 문제와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하여 인력난이 심각해지면서 다단계 하도급이 확대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고용의 질이 더욱 나빠지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과거 세 차례에 걸쳐 발생했던 ‘대우조선 단체교섭 관련 분쟁’’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아래는 분쟁해결연구센터 ‘공공갈등 DB’에 수록된 ‘대우조선 단체교섭 관련 1991년 분쟁 사례’의 일부분이다.
<‘대우조선 단체교섭 관련 분쟁’의 일부 경위>
1990년 12월 27일 대우조선 노조는 사측과의 단체협약 갱신 교섭이 더 이상 진전이 없자 경남지방 노동위원회와 장승포시에 쟁의발생 신고를 냈다.
1991년 1월 18일 대우조선 노조는 쟁의 발생 신고 후 냉각기가 끝남에 따라 파업 여부를 묻는 조합원총회를 통해 파업을 결의했으며, 1월 28일부터 부분파업에 돌입했다.
1991년 2월 8일 대우조선 노조는 사측과의 단체협약 갱신 마지막 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이날 노조원 3,000명은 사내 골리앗 크레인 밑 광장에서 ‘총파업 1차 전진 대회’를 가졌으며 백순환 노조 위원장 등 50명의 노조 간부는 6개월분의 비상식량과 생필품을 준비, 2월 7일부터 골리앗 크레인 위로 올라가 철야 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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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2월 9일 대우조선 노조는 사측과의 49번째 단체교섭을 가졌으나 사측이 골리앗 크레인 점거농성에 가담한 백순환 위원장의 참석을 주장하면서 논란을 벌이다 결렬되었다. 이날 노조원 3,000여 명은 골리앗 크레인 광장에서 ‘총파업 2일 차 전진 대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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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2월 10일 경찰은 대기업노조 연대회의 총회에 참석한 노조 대표 67명을 ‘3자 개입’ 혐의로 병력 60여 명을 동원하여 강제연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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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2월 13일 대우조선 노사분규는 52번째 단체교섭을 통해 사실상 타결되었다. 노사는 이날 교섭을 통해 ▲징계해고 시 노사합의 ▲상여금 600% 지급 등 20개 미타결 조항에 대한 합의를 이루어냈다.
1991년 2월 23일 대우조선 노조원은 정상조업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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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4월 2일 대우조선 노조는 노조 유인물 ‘함성’을 통해 근로자들에게 정상조업을 당부, 정상조업에 들어가면서 대우조선 파업 분쟁은 종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