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형 교수(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한국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평가가 2년 연속 제기되었다. 스웨덴 예테보리대학 산하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V-Dem)가 매년 3월 발표하는 ‘민주주의 보고서 2024’에서는 한국이 민주화에서 독재화(autocratization)로 전환중인 국가로 평가한데 이어, ‘민주주의 보고서 2025’에서는 독재화로의 전환은 물론 31년간 유지해 왔던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한 단계 낮은 ‘선거 민주주의국가’로 분류한 것이다. 이에 더하여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2024’에서도 한국은 민주주의 성숙도에서 전 세계 167개국 중 32위로 10단계 떨어졌으며, 최상위 단계에서 탈락한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었다.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는 선거민주주의, 삼권분립과 시민자유, 표현의 자유 및 평등 등의 지표를 중심으로 자유민주주의 지수를 산출하고 있는데, 2024년 보고서에서 한국은 2023년 지수가 0.60점으로 179개 국가 중 47위에 머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9년 0.78점(18위), 2020년과 2021년 0.79점(17위), 2022년 0.73점(28위)에서 크게 하락했음을 보여주는 결과이다. 그런데 문제는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지수가 비록 0.63점으로 41위로 약간 상승하기는 했지만, 국가 유형 분류에서는 오히려 선거 민주주의국가로 분류되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는 국가 유형을 첫째, 선거민주주의 국가에 더하여 행정부에 대한 사법적·입법적 통제, 시민적 자유 보호, 법 앞의 평등도 함께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국가’, 둘째, 자유롭고 공정한 다당제 선거, 만족스러운 수준의 참정권과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는 ‘선거민주주의국가’, 셋째, 다당제 선거는 가능하지만, 기초적 민주주의 요소가 결여된 ‘선거 독재체제’, 넷째, 다당제 선거가 불가능하며, 언론·결사·선거의 자유와 같은 기초적 민주주의 요소가 결여된 ‘폐쇄 독재체제’ 등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행정부에 대한 사법적·입법적 통제, 시민적 자유 보호 및 법 앞의 평등이 과거보다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고 평가된 것이다. 이에 더하여 2024년 12월 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여의도 집회 사진을 2025년 보고서 초반부에 배경 사진으로 게재하여 한국을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대표적인 국가로 선정하기도 하였다.
물론,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는 2025년 보고서에서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 반면에 권위주의가 부상하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지만, 특히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떠한 요인들에 의해 후퇴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다양한 요인들을 꼽을 수 있겠지만, 여러 전문가들은 행정부의 지나친 권위주의적 통치행태를 지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행정부와 입법부 간의 대화 단절, 국회에서 의결한 다수의 법률안들에 대한 거부권 행사, 법률을 우회한 시행령 통치, 언론사 및 언론인들에 대한 편파적 대우, 그리고 ‘입틀막’으로 상징되는 자유로운 의사표명의 제약 등을 들 수 있다.
현재 한국은 경제적 불평등, 차별과 혐오, 관용과 신뢰의 실종으로 보수와 진보진영간 극한 이념갈등이 진행되면서 대의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은 이승만 독재 정권을 종식시킨 4.19 민주주의 혁명 이후 민주주의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마다 국민들이 분연히 일어나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켜왔다. 그러한 과정에서 많은 시민들의 숭고한 희생도 뒤따랐다. 반면, 2000년대 들어서서는 세계적으로 평가받는 ‘촛불평화집회’라는 시민들의 힘으로 한국 민주주의를 되살려 가고 있다. 민주주의는 마치 생물과도 같아서 공동체의 통합된 관심과 돌봄이 있어야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한국 민주주의도 국민들 간의 대립과 갈등을 지양하고 협력과 통합을 지향해 나갈 때 그 생명을 유지하고 보다 성숙한 단계로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금번 6.3 조기 대선이 그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